사도행전 16장 16-40절 “주 예수를 믿으라” / 찬8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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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배경은 빌립보입니다. 드로아에서 네압볼리를 지나 빌립보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도시는 어떤 도시인가요?
사도행전 16: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빌립에게 바쳐진 도시입니다. ‘첫 성’이라고 하는 것도 으뜸가는 도시라는 의미입니다.
즉 로마에 충성을 다하는 으뜸가는 도시였던 것이지요.
따라서 이 도시는 회당을 둘 수 없는 환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도행전 16: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기도할 곳을 찾아 다닙니다. 강가에 있는 여인들에게 물을 정도로 기도처를 찾습니다.
주께서 도우시지요.
사도행전 16: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기도하고자 하는 우리 마음에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기도할 수 있는 곳을 주시지요.
이 지역 빌립보에서 이렇게 교회는 시작됩니다. 한 여인의 집에서 말이지요.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곳이 없습니까? 기도할 시간이 없습니까?
“울 곳” 김영환 -
할매 어디가요? 교회간다
왜 가요? 울러간다
울 곳이 없어 교회 간다.
저와 여러분의 울음의 장소가 바로 이 곳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루디아의 헌신처럼 여러분의 가정이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고자 하는 바울의 모습처럼 당신이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복음 전파로 매질과 투옥을 당하는 바울과 실라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건은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지요.
사도행전 16: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이 귀신이 주의 종을 알아봅니다.
사도행전 16: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귀신들린 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본 것처럼, 제자들을 알아봅니다.
지극히 높은 하나님을 압니다. 구원의 길을 전하러 온 목적도 압니다. 이 일이 여러날 반복이 됩니다.
사도행전 16: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바울은 귀신 들린 자에게 마음을 돌이킵니다. 그리고 선언합니다.
사도행전 16: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예수님께서는 단지 “나오라”라는 것으로 귀신을 쫓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명하노니 나오라 명령하는 것이빈다. 바울은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그 권세를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이 귀신들린 사람을 고친 사건이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히게 됩니다. 16절 말씀처럼 “점치는 일”로 “큰 이익”을 주던 종이었기 때문이지요. 한 사람의 인생이 나쁜방향으로 가더라도 나에게 이익을 준다면 괜찮다는 여종의 주인들의 모습이지요.
이 시대에 혹 우리에게 이 모습이 있다면 점검해야 합니다. 나에게 이익을 준다면 어떤 일이라도 괜찮다고 하는 그런 모습에 괴로워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 것 떄문에 18절 “심히 괴로워하였습니다”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한 영혼을 위하여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으로 선포합니다.
이 말씀앞에 겸허해 집니다. 쉽지 않습니다. 사리와 이익을 좇아 가는 것이 우리에게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바울의 마음을 품는 것을요,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지요.
한 영혼 앞에서 심히 괴로워 하는 바울의 모습이 저와 여러분 삶 가운데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이전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셨습니다.
마태복음 26:37–38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고민하고 슬퍼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좀 더 나아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아버지여…지나가게 하옵소서.
바울이 하루하루 이 여종을 만날 때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했을 것입니다.
매일 마주하는 그 모습에 괴로워합니다. 힘들어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매일 기도했을 것입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길에 이 여인을 만났다고 성경은 표현합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던 주님처럼,
바울도 “주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고백하며 기도의 자리로 걸어갑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에게 바라보게 하는 한 영혼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자꾸만 마주하게 하는 현상이 있으십니까?
그 사람이나 상황을 마주하며 피하고 싶으신가요? “
주님이 우리를 감당하셨던 것처럼, 바울을 통하여 주목하게 하시는 것처럼…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이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기를 축복합니다.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 받는 “신신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며, 정결케 하십니다.
루디아와 같은 돕는 자를 주십니다.
이 새벽 저와 여러분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응답이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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